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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우개야” – 하찮은 존재에서 소중한 존재로의 감정 여행
어느 날, 아이가 책장 깊숙이 꽂혀 있던 낯익은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표지를 보는 순간, 어린이집에서 매달 받아오던 그림책 중 하나라는 걸 떠올렸습니다. 아이가 그리워했던 이야기는 바로 <나는 지우개야>였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지우개’라는 물건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감정의 결들이 섬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자신을 비추어볼 수 있는 작은 거울 같은 책이죠.
아이와 함께 다시 만난 지우개 양
책의 표지에는 핑크빛 지우개가 등장합니다. 귀여운 안경을 끼고,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죠. 이 지우개는 특별히 성별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길게 묶은 머리 덕분에 저는 자연스레 ‘지우개 양’이라 불렀습니다. 아이들도 ‘지우개 언니’라고 부르며 정겹게 다가가곤 하죠.
그림책 속에는 연필, 자, 풀 등 필통 속 친구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 친구들은 지우개의 존재를 은근히 무시하거나, 관심 밖에 두고 있는 듯한 묘사가 나옵니다. 그런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이 관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지워버리는 존재,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나는 지우개야>는 ‘지우개’라는 존재를 통해 ‘자존감’이라는 주제를 쉽고도 자연스럽게 풀어냅니다. 연필은 그림을 그릴 수 있고, 풀은 무언가를 붙일 수 있습니다. 모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죠. 그에 반해 지우개는 ‘무언가를 지운다’는 소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 지우개는 친구들이 모두 함께 모여 그림을 완성할 때, 자신도 뭔가를 하고 싶어 열심히 지웁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친구들은 소중하게 만든 그림을 망쳤다고 화를 냅니다. 지우개는 실망과 자책 속에서 자리를 떠나고, 쓰레기통 안에서 종이 친구들을 만나며 위로를 받습니다.
종이 친구들은 말합니다.
“우리랑 네가 없었다면, 연필은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을걸?”
이 짧은 문장은 어른이 읽어도 울컥하게 만듭니다. 평소 하찮게 느껴졌던 나의 역할이, 사실은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존재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죠.
지우개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이 가장 집중하는 부분이 지우개가 다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멋진 종이비행기를 타고 다시 돌아온 지우개는 친구들의 실수를 해결해주고, 모두와 화해합니다. 아이들은 이 장면에서 ‘돌아온 히어로’를 보는 듯한 설렘을 느끼고, 지우개를 더 좋아하게 되지요.
<나는 지우개야>는 단순히 실수를 지우는 물건이 아닌, ‘상처를 감싸주는 존재’로 지우개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나는 왜 이렇게 쓸모가 없을까’라는 감정을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그림으로 전해지는 생명력과 감정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글뿐 아니라 그림에서도 느껴집니다. 부드럽고 다채로운 색감의 일러스트는 지우개와 연필 같은 필기구에 생명을 불어넣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핑크빛 지우개의 감정 변화는 얼굴 표정뿐 아니라 자세, 배경 색 등으로도 섬세하게 표현됩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 속에서 감정을 읽고, 스스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지우개가 슬퍼졌어”, “이제 다시 기뻐졌어”라고 말하며, 자신이 겪은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일상의 소소함이 전하는 울림
<나는 지우개야>는 일상 속 흔한 물건을 통해 깊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성과’를 내는 사람을 주목합니다. 결과가 명확하게 보이는 사람들만 인정받는 사회 속에서 ‘과정’을 도운 사람들은 쉽게 잊혀집니다. 마치 그림을 그린 연필은 칭찬받지만, 실수를 지운 지우개는 외면당하듯이요.
하지만 이 책은 말합니다. 실수를 없애는 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돕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들에게는 이 메시지가 자존감 회복의 씨앗이 되고, 어른들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지우개처럼 묵묵히, 그러나 꼭 필요한 존재로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는 다양한 감정들 — 소외감, 인정받지 못하는 서운함,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민 —은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대화의 물꼬를 트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른인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지우개처럼 보이지 않는 일을 해왔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도 큰 의미가 됩니다. 책 한 권이 주는 감정의 깊이는 독자의 마음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른이 된 지금, 아이와 함께 읽은 이 책이 제게도 위로가 되었듯이, 누군가에게도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무리하며
<나는 지우개야>는 단순한 그림책을 넘어,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거울 같은 책입니다. ‘지우개’라는 존재의 의미를 통해 우리는 잊고 있던 ‘내가 있어야 세상이 굴러간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한 아이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고, 한 엄마는 아이가 얼마나 예민하게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른인 저 역시, ‘지워지는 존재’가 아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혹시 지우개처럼 조용히 살아오신 분이시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조용하지만 깊은 위로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함께 따라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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